들어가면서.

지난 4월 블로그를 새롭게 개편하고, 7월에는 상반기 회고를 업로드 했었다. 상반기 회고에서 이런 문장들로 총평을 남긴게 생각난다.

사실 하반기는 한숨이 한참은 더 늘었다. 어제 잠깐 만난 친구가 ‘한숨은 속에 있는 안 좋은 것을 억지로라도 꺼내서 새로운 좋은 것으로 가득 채우려고 하는 스스로의 노력이다.’라는 말한 게 생각난다. 2023년 하반기는 내 안에 쌓인 안 좋은 어떤 것들이 너무 자리를 잘 잡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상반기 회고에서도 말한 것처럼 ‘혼자서도 잘 살아가는 나’의 모습에 집착하고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퇴사하고, 치료를 받고, 다시 이직을 준비하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생기는 조급함이 그런 감정을 만든 것일 수도 있겠다 싶다. 무작정 ‘다 잘될 거야’라고 아무렇지 않게 낙관적인 마인드로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고, 지금 가진 역량을 더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객관화 하는 시간을 가져서, 다시 시장에서 팔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내년의 궁극적인 목표다. 시간이 걸릴 수도 있으니까 조급함을 줄이는 연습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2023년은 정말 순식간에 모든 게 지나갔다. 자신에게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될 ‘2024년의 나’에게, 어렵지만 잘 버티고 또 어떻게든 성장한 ‘2023년의 나’를 보낸다. 그래도 러닝을 통해 육체적으로 건강해진 몸을 보낼 수 있어서 만족스럽다. 2024년은 또 어떤 만남이 쌓이고, 그 만남으로 어떤 기억이 형성될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건 어떤 새로운 만남이든 그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내고 나에 대한 책임감을 높일 수 있도록 행동할 거라는 것이다.

지난 2년간 이어온 ‘올해의 OOO’ 을 공유하면서 2023년의 나를 2024년에 보낸다.

올해의 OOO

올해의 선택 - 퇴사와 러닝

누가 뭐라고 해도 올해 나에게 가장 임팩트 있었던 선택은 ‘퇴사’다. 반강제성(?)을 지녔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떻든 나의 지금을 만들어준 것은 퇴사다. 퇴사로 인해, 나의 지난날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볼 시간이 생겼고, 다른 새로운 도전을 다시 시작해 볼 용기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매일매일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와 같은 정말 현실적인 책임감에 대한 질문에 현명하게 매일매일의 답을 채우고 있진 않지만, 눈을 또 제대로 뜰 수 있게 하는 시간을 준 것에는 틀림이 없다.

새로운 회사에서 나의 쓰임이 어떻게 될지를 기대하면서 열심히 다음 회사를 찾아보고 지원도 하고 또 깨지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쉬운 것은 없기 때문에 또 너무 조급해하지는 말자.’ 라고 속으로 계속 스스로를 다독이고 깨우치게 하는 올해의 선택 중 하나다.

정말 올 한 해는 러닝에 푹 빠져 살았다.. 내년에도 아마 그러지 않을까 싶다.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잘한 선택은 ‘러닝’을 내 주력 운동으로 삼은 것이다.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는 최대 일주일에 3번 정도 산에 오를 정도로 등산에 미쳐있었다. 러닝은 부가적인 운동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4월부터 러닝이 정말 재미있어졌다. 아마 그때부터 어떤 일에 몰입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어떤 하나의 일에 몰입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그 몰입의 상황에서 발생하는 답답함을 이겨내기 위해 동네를 뛰고는 했다. 아마 그래서 올해 러닝과 부쩍 친해지지 않았나 싶다.

러닝만큼 돈과 시간과 공간과 날씨에 크게 제약받지 않는 운동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내부 공간에서 기구를 가지고 하는 피트니스는 시간과 공간과 날씨에 영향을 크게 받지 않겠지만 돈이 문제다. 러닝은 적당한 러닝화 한 켤레와 적당히 다 벗지 않은 옷과 달릴 의지만 있으면 준비가 끝난다. 11월에 나갔던 마라톤 대회를 준비할 때는 비가 오는 날에도 7km씩을 달렸다. 달리는 매일의 순간이 정말 즐겁다. 그렇기 때문에 올해의 선택 두 번째는 당연하게도 러닝이 맞다.

올해의 콘텐츠

올해의 영화 - 엘리멘탈

오펜하이머와 마지막까지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올해의 영화는 보는 내내 계속 가슴이 따뜻했던 ‘엘리멘탈’ 을 고르는 게 맞겠다 싶었다. OTT나 유튜브의 덕분으로 하나의 영화나 콘텐츠를 긴 호흡 한 번으로 보는 게 어려워진 요즘인데, 엘리멘탈은 디즈니플러스에 업로드되어 2회차로 감상하는데도 한 호흡에 끝까지 보게 만들었다. 그래서 올해의 영화로 ‘엘리멘탈’을 선정했다.
_ps.엘리멘탈은 라따뚜이, 겨울왕국 이후로 처음 내가 왓챠에서 4.5점을 준 애니메이션 영화로 등극했다.

올해의 넷플릭스 - 더 글로리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한국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중 최고의 작품이라고 나 스스로 평가하는 ‘더 글로리’ 를 올해의 넷플릭스 작품으로 고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올해 초에 파트 2가 끝나고, 동은의 복수가 모두 마무리된 시점에서 허탈감까지 느껴질 정도로 이 작품에 푹 빠져 있었다. 잊어갈 때쯤 유튜버분들이 파트1, 2를 몰아서 요약해 준 콘텐츠를 보면서 ‘아 맞아.. 더 글로리는 대박이었어..’하면서 여러 번 재탕했던 작품은 더 글로리가 유일한 것 같다.

올해의 드라마 -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무빙

올해 최고의 작품은 개인적으로 ‘더 글로리’라고 생각하지만, 여유 시간을 풍부하게 잘 채워준 드라마 작품은 ‘무빙’ 이다. 강풀 작가의 원작을 디즈니플러스에서 드라마화한 무빙은 서사와 주인공들의 연기와 그 오묘한 CG들이 조화를 이루어 멋진 작품으로 세상에 나왔다. 무빙을 보기 위해서 디즈니플러스에 신규 가입한 주변 지인들이 있을 정도로 올여름의 무빙은 특별했다. 더 글로리와는 다르게 매주 2편씩 업로드되어서 OTT에서 보는 게 아닌 지상파나 공중파 TV 채널에서 보는 한국 드라마 느낌이 났다. 무빙은 정말 좋은 드라마였다.
_ps. 무빙에서는 개인적으로 ‘봉석이’ 역할이 좋았다. 고윤정 배우도 좋았고!

올해의 예능 - 넷플릭스 오리지널 데블스 플랜

솔직하게 정종연 감독의 다양한 추리 시리즈를 이전까지 썩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인플루언서들이 한 공간에 모여서 상금을 위해 정치도 하고 머리를 써서 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이 반복되다 보니까 나에게는 몇 편을 보면 루즈한 감이 있었다. 그런데 넷플릭스 오리지널로 나온 ‘데블스 플랜’은 조금 달랐던 것 같다. 오히려 내가 이런 장르의 예능을 좋아하는구나 하는 인식 전환을 만들어준 작품이었다. 준비된 게임들도 정말 흥미로웠지만 출연진들도 새로움으로 가득해서 좋았다. 올해의 예능은 데블스 플랜이다.

올해의 유튜브 - 뜬뜬 채널 핑계고 시리즈

2022년과 동일하게 올해도 빠더너스 채널의 유튜브 콘텐츠를 사랑했다. 그런데 올해 초부터 유튜브에 ‘유재석’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사실 2022년 연말부터 ‘핑계고’ 라는 시리즈가 있었는데, 불을 활활 지피기 시작한 건 확실히 ‘설 연휴는 핑계고’ 였을 것이다. 유재석의 확실한 서브 동생들인 ‘조세호, 남창희’가 패널로 나오고 배우 ‘이동욱’이 나와서 그냥 떠들어 재낀다. 근데 정말 웃기다. 유재석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예능인이고 조세호와의 조합은 어마어마하다. 핑계고는 유재석을 중심으로 게스트들이 한 시간 정도 떠들기만 하는데도 너무 웃기다. 연말에는 핑계고 어워즈를 하기까지 했다. (이동욱이 대상을 탔다.) 내년의 핑계고가 어떻게 진행될지도 너무나 궁금하다.

올해의 노래 - 뉴진스

작년부터 뉴진스를 정말 사랑하기 시작해서 올해도 뉴진스의 노래를 사랑하고 있다. 최근에 애플뮤직에서 올 한해 많이 들은 노래들을 Recap 해주었는데 차트의 상위 다섯 곡이 모두 뉴진스의 노래였다. 걸그룹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는데 뉴진스는 좀 뭔가 많이 달랐다. 특이한데도 아름답고 오묘하면서도 절묘하다. 정말 한 단어로 딱 설명하기 힘든 그룹이다. 그래서 뉴진스가 참 좋다. 파워퍼프걸과 협업한 키링도 샀다 :-)

올해의 책 - 하루키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올해는 그래도 지난해보다 책과 더 친했다. 상반기의 책으로 ‘일의 격’을 골랐다. 하반기의 책으로는 하루키의 오래된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를 골랐다. 내가 달리기에 빠져 있기도 했고, 하루키를 오래전부터 좋아하기도 했고, 하루키의 장편 신작이 정말 몇 년 만에 나오기도 해서 이 책을 찾아다녔다. 절묘하게 집 주변의 알리딘 중고 서점에 이 책이 있었고, 바로 뛰어가서 사 온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이 책을 다 읽었다.

오래전에 신문에 기고했던 하루키의 글을 엮은 산문 에세이다. ‘달리기’와 ‘소설가의 일’에 대한 관계를 설명하면서 하루키 본인이 왜 달리기에 빠져있는지를 하루키의 문체로 전달해 준다. 나도 달리는 사람 중 하나로써 몰입하게 만든 문장이 몇몇 있었다. 그중 으뜸을 남긴다.

이 문장을 읽고 나는 책에 이렇게 적어뒀다. ‘내가 계속 달려야 하는 그 작은 이유는 누가 뭐라고 해도 소중한 것이다. 소중하면 잘 단련해서 함부러 부서지지 않게 만들자.’ 올해 하반기의 책으로 손색이 없었다.

_ps. 하루키의 신작 ‘그 불확실한 도시의 벽’은 새로웠지만 엄청나지는 않았다 개인적으로.
_ps. 올해 잘 읽었던 다른 책으로는 '일의 격, 원씽, 유난한 도전'이 있다.

올해의 F&B

올해의 음식 - 부산에서 먹은 전어회

부산 본가에 내려가서 부모님과 제철로 먹은 전어회가 어떤 음식보다 1등이었다. 우리 가족이 갔던 횟집은 부산의 전통을 가진 오래된 업장이었다. 양배추 슬라이스 + 콩가루 + 초장 샐러드를 만들어 먹을 수 있게 주시기 때문이다. 가족 세 명이서 3만원치를 먹고 2만원치를 더 시켜먹었다. 부산에서 회를 먹는다는 것은 이렇게 저렴하게 푸짐하게 쌓아놓고 먹는걸 의미할 것이다.

올해의 아쉬운 음식 - 파이브가이즈

파이브가이즈 강남점이 오픈하고 한 달 정도 뒤에 아침 8시에 대기를 걸러 강남에 나갔다. 이미 33개의 팀이 앞에 예약해둔 상태였다. 12시가 다 되어서야 입장을 할 수 있었고, 이미 늘어서 있는 줄을 기다리느라 주문하는데만 20분을 썼던거 같다. 감자튀김은 확실히 새로운 맛이었다. 토핑을 잔뜩 추가할 수 있는 쉐이크도 인상적이었다. 햄버거도 가격만큼 내용물이 풍성하고 좋았다. 그런데 뭔가 아쉬웠다. 내가 그렇게 시간을 다 투자해서 기다려서 먹을만큼의 가치를 내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올해의 아쉬운 음식으로는 파이브가이즈를 선택한다.

올해의 술 - 맥주 Kelly

사실 올해는 술을 그렇게 즐겁게 많이 마시지 못했다. 그래서 올해 딱 기억나는 술이 없다. 그럼에도 선택한다면 손석구님이 모델을 하고 계신 하이트의 새로운 맥주 'Kelly'를 꼽겠다. 우리 동네 마트에 켈리 캔 맥주가 들어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다. 충분히 부드럽고 충분히 맛이 진한 먹음직한 라거였다. 출시 이후로 적당히 사 마셨던 것 같아서 올해의 술로 정했다.

올해의 과자 - 꼬북칩 초코 츄러스

말이 필요없다. 완벽한 맥주 안주이고 완벽한 과자다. 초코에 시나몬 가루가 적당히 뿌려져 있고 적당히 달다. 꼬북칩의 그 겹겹히 뭉쳐진 크리스피함도 가지고 있다. 초코가 조금 더 진득히 발라진 부분을 우연히 마주하게 되면 그렇게 기쁠수가 없다. 아마도 내년의 과자에도 이 과자가 선정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성인이 되고나서 제돈주고 사먹은 과자 중에 1등이다.

올해의 기억들

올해의 기술 - 누가 머라고 하더라도 애플페이

3월 21일. 이 날을 잊을수가 없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애플페이 가 정식으로 한국에 출시한 날이다. 출시 예정 소식을 올해 초부터 기사로 접했기 때문에 미리 현대카드 2장을 발급 받았다. 출시날 아침에 아이폰 없이 애플워치만 차고 나가서 러닝을 하고 CU에서 에너지 음료를 하나 사서 마셨다. 직원분도 살짝 어리둥절 하신거 같았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다. 그 후로 애플페이 마크가 보이면 주구장창 애플페이로만 결제했던거 같다. 새로 생긴 가게 키오스크에 애플페이 마크가 붙어있으면 그렇게 기쁠수가 없었다. 아직 교통카드도 지원하지 않고 가맹하지 않은 곳도 많고 지원하지 않는 카드사가 대부분인데 내년에는 다 해소될거라고 본다. 올해의 기술로 뽑지 않을수가 없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거진 10년만에 들어온거지만서도)

올해의 즐거움 - 마스크 해제

2023년에 드디어 마스크를 모든 곳에서 벗을 수 있게 되었다. 어색했다. 지난 3년간 없어서 못 살 때가 있었을 정도였던 마스크를 드디어 벗을 수 있었다. 코로나 시기가 어땠는지 이제 잘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다. (사실 생생하다. 그만큼 마스크 해제가 기쁘다는 뜻) 지하철에 마스크를 벗고 탑승했던 순간이 정말 기분 좋았다. 내 인생에서 아마 한 꼭지를 차지할 코로나가 이렇게 끝났다.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다.

올해의 액티비티 - 라이프 마라톤 대회 10km 출전

러닝에 빠지고 퇴사도 해서 뭔가 도전적으로 할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의 러닝 실력을 한 번 시험해보자고 결론을 내렸다. 11월에 진행되는 '라이프 마라톤 10K'에 아무 생각없이 무작정 지원했다. 아무생각 없이 지원하니까 날짜가 다가올 수록 초조해졌다. 그래서 대회 한 달 전부터 러닝 km수도 늘리고, 호흡도 조절해보고, 여러 시뮬레이션을 했다. 그렇게 준비한 대회에서 믿을 수 없는 성적으로 골인했다. 10km를 43분 42초로 달렸다. 나 스스로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불러 일으켜준 액티비티였다. 내년에도 또 10km를 달리고, 된다면 하프까지 욕심을 내고 싶다.

이제 얼마 있으면 2024년이 된다. 어제와 똑같은 그저 내일일 뿐인데 새해 첫 날은 그렇게 의미가 다르다. 나는 일출을 보러 산을 일찍 오를 예정이다. 된다면 이 블로그 제일 아래에 내일의 일출 사진을 올리고 싶다.

내년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다시 마지막 날을 보내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 어쩌면 마지막날을 맞이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그만큼 앞으로의 일은 아무도 쉽게 내다보지 못한다. 이게 이렇게 될거야 라고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불확실함에서 ‘나’를 ‘나로써’ 받아들이고 나만의 명확함을 가지려고 노력하면 될 것 같다. 힘내자. 어설픈 힘내자라는 단순한 응원이 아니라 아프지 않기 위해 내 스스로가 나에게 하는 진실된 응원이다. 또 잘 살아가보자. 잘 살지 않아도 어떻게든 살아보자. 2023년도 참 많이 고생했어 한결아.